실망하면 어떡하지-강세형

서점에 가서 내 돈으로 처음 만화책을 샀던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만화방에서 한 번 보고 마는 걸론 너무 아쉬워서
처음으로 샀던 만화책.
그건 완결되지 않은 것이었다.
그 후 두 달 혹은 석 달에 한 번 꼴로 나오는
그 만화책의 다음 권을 기다리는 건 괴로우면서도 무척 즐거운 일이었다.

'슬슬 다음 권이 나올 때까 됐는데?'
매일 서점을 기웃거리기.
'오늘도 안 나왔네'
체념하고 집으로 돌아가 1권부터 다시 읽기.
'아 도대체 왜 안 나오는 거야!'
그러다 혼자 버럭하기.

그렇게 혼자 아등바등하다
어느 날 서점에 꽂혀 있는 다음 권을 발견했을 때의 쾌감!
애타게 기다렸던 만큼
비닐을 벗겨낼 때의 그 두근거림은 정말이지 짜릿했던 기억!

기다렸던 만화책의 다음 권.
기다렸던 감독의 다음 영화.
기다렸던 작가의 다음 책.
기다렸던 뮤지션의 다음 앨범.
언제나 내게
설렘과 두근거림을 안겨줬던 존재들.

며칠 전 기다렸던 뮤지션의 새 앨범을 만났다.
지난 앨범에 대한 만족도가 워낙 컸기 때문에
앨범을 보자마자 냉큼 집어 들었는데
비닐을 벗겨내고 CD 플레이어에 CD를 집어넣기 직전,

'실망하면...... 어떻하지?'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거다.
그리고 이어
고등학교 시절 두근두근 입 꼬리가 올라간 상태로 새로 나온 만화책의 비닐을 벗겨내던 내가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그런 생각 따윈 하지 않았는데
마냥 설레고 마냥 즐겁고 마냥 두근거렸을 뿐인데.
갑자기 조금 씁쓸해져 버렸다.
도대체 내가 언제 이렇게 부정적인 인간으로 변해버린 걸까.

실망하면 어떡하지.
상처받으면 어떡하지.
실패하면 어떡하지.

그렇게 주저주저.

여러번의 실망, 여러번의 상처, 여러번의 실패.
그 새이 어느덧 나는 겁쟁이로 변해 있었다.
설레보단,

두근거림보단,

언제나 걱정이 앞서는 겁쟁이로.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강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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